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카시마시 ~Girl Meets Girl~ 4장 2막

카시마시 ~ Girl Meets Girl ~

원작 - 아카호리 사토루
저자 - 코마오 마코
 Translation by - J.D.S.





후우, 요즘 좀 이래저래 여유가 없었더니 타이핑은 아주 내팽개쳐져있었군요.
...얼마 안 남았으니 천천히 하지- 하는 생각이 조금 들어버린 탓에 그런 걸까요...
얼마 안 남았으니 얼른 끝내자- 라는 생각을 좀 해봐야지 원...;

...그나저나, 아유키 님 멋지신데...
아유키 시점이나 조연 외의 번외편을 담은 단편집이 나왔으면 참 재미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제 4장. 하즈무, 흔들리는 마음(戀心)

2.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답을 듣고 난 쟝 푸우는, 계속해서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진지한 눈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옆모습은, 평소의 천진함이 더해져 왠지 신비스러웠다.
나는 평소처럼 내 자리에서 턱을 괴고 밖을 내다보며, 어젯밤 쟝 푸우에 대해 생각했다.
쟝 푸우에게 질문을 받은 밤부터, 나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내게 있어 좋아한다는 건 어떤걸까 하고.
나는 분명 야스나를 좋아했다. 정말 진심으로. 그래서 그 날도, 야스나에게 고백하려 했다.
지금도 내 안에 있을 거다. 토마리가 느낀 것처럼, 또 알려준 것처럼, 내 내면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면.
누군가를 굉장히 좋아한다는 마음이, 이 안에 있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게 어떤 색이며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어쩌면 잃어버리고 만 것이 아닐까. 너무도 불안한 일이지만.
좋아해, 라…….
나는 입 속으로 중얼거리고는, 시선을 야스나의 뒷보습에 고정시켰다. 등허리에서 부드럽게 파도치는 긴 검은머리. 노트에 필기를 할 때도, 야스나의 자세는 예뻤다.
오래토록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 뒷모습.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 내 주변 세계의 모든 것이 빨려드는 듯한 감각이다. 소리도 색도 빛도 모두 다 야스나에게 모여들어, 나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야스나를 중심으로 세상이 펼쳐진 듯한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그 감각은 너무도 막연해서, 내 안에 정확히 그려낼 수 없다. 전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야스나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나는 이번엔, 붙박혀버린 시선을 조금 틀어서, 토마리를 흘끔 봤다.
토마리는 평소와 같은 자리에서, 따분한 듯 시계를 보고 있다. 노트는 나중에 아유키 것을 배낄 생각인지, 샤프조차 안 쥐고 있다.
그런 옆모습에 안도감을 느낀 나는, 작게 미소지었다.
언제나 함께였던 토마리. 여자아이가 되고서야, 내가 얼마나 토마리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지 깨달았다.
위태로운 발걸음을 주의해주고, 쓰러질 것 같으면 금새 나를 지탱해준다. 내게 있어 토마리는, 그런 존재다.
언제나 토마리가 웃었으면 좋겠고, 조금이라도 행복해졌으면 하고 바란다. 언제나 도움을 받기만 할 게 아니라, 뭔가 도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니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어줬으면 하고 절실히 바란다.

"아-아……."

팔과 팔 사이에 고개를 묻고, 나는 책상에 엎드렸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도록, 신음 섞인 한숨을 좁은 공간 안에 토해냈다.
어중간하게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스럽다. 좋아한다는 건, 단순한 감정일텐데. 간단하기에 쉬이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는 걸까…….
나는 지금, 누구를 좋아하는 걸까. 아니, 누군가를 좋아하기는 하는 걸까.
그 사람의 모든 걸 갖고 싶거나, 모든 걸 주고 싶어지는.
나는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를 들으며, 엄마가 한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았다.
내 안에 분명히 그런 마음이 있었을텐데.
생각하기도 지쳐서, 나는 미간에 생긴 주름을 지우며 가방에 노트를 넣기 시작했다. 오늘은 아스타와 아유키, 토마리도 방과후에 예정이 없으니, 오랜만에 함께 돌아갈 수 있다.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아유키에게 상담해볼까…….
그런 생각을 하며 가방을 들던 그 때, 야스나가 찾아왔다. 벌써 돌아갈 준비는 끝났는지, 굳게 입을 닫은 가방을 손에 쥐고서.
야스나는 미소지으며 나를 보고 있었지만, 그 눈 안에는 진지한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하즈무 군, 오늘은 부활동 없어?"
"음, 딱히 할 일도 없으니까."

물 주기는 당번이 할 일이고, 화단 정리도 점심 때 끝냈다.
내가 끄덕이니, 야스나의 표정이 화악 밝아진다.

"그러엄, 같이 돌아가도 될까?"

어딘지 들뜬 것처럼 들리기까지 하는 목소리로, 야스나는 기쁜 듯 말했다. 그런 야스나의 하이 텐션에, 나는 복잡한 표정을 짓고 만다.

"그게……."

뭔가 대답할 말을 찾기 전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이, 하즈무. 집에 가자-!"

토마리다. 돌아보니, 교실 뒷문 앞에서 토마리와 아유키, 아스타 이렇게 셋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말을 마치고 바로 토마리도 야스나를 발견했는지, 조금 엄한 표정을 짓는다.
뭐랄까, 거북하다.
야스나에게 선약이 있어서 같이 못 가, 같은 냉랭한 말은 못하겠다. 하지만 야스나와 단 둘이서 돌아갔다간, 토마리의 표정이 어떻게 될 지는 안 봐도 뻔하다.
야스나의 것이 되지 말아달라던 토마리의 말이 떠올랐다. 둘이서 돌아간다고 해서 딱히 그 사람의 것이 되는 건 아니지만, 토마리가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걸 생각하니 불안해진다.
어떻게 하면 좋을 지,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나는 머릿 속이 어지러워졌다. 야스나인지 토마리인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네게 그건 선택지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아스타와 아유키가 토마리를 데리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다.

"오, 카미이즈미도 같이 갈래?"

아스타가 야스나와 토마리 사이에 있는 미묘한 공기는 아랑곳 않고 쾌활하게 말했다. 그 한마디에, 내 심장이 한껏 뛰어올랐다.
다 함께 돌아간다. 그건 매우 매력적인 선택지 인 것 같다. 하지만 함께 돌아가는 야스나와 토마리의 모습을 상상해보니, 그다지 낙관적일 것 같지는 않았다.
아스타의 말이, 긴장의 끈처럼 우리들 사이를 비집고 빠져나간다.

"저, 저기……."

어떻게든 그 분위기를 무마하려했는지, 내 입이 멋대로 움직인다. 말을 꺼내긴 했지만 그 뒤를 이을 수가 없다.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났는지, 당황하는 내 옆에서 아유키가 입을 열었다.

"그거 괜찮은데? 다 같이 돌아갈까?"
"에?"

무심결에 되물은 건 나 뿐이었지만, 표정으로 보건데 야스나와 토마리도 꽤나 놀란 듯 했다.
하지만 네 명의 시선을 받는 정도로는 눈도 꿈쩍 하지 않으며, 아유키는 평소처럼 교실 문턱을 넘었다.



우리는 새삼스럽지만 반문할 타이밍을 놓치고는, 아유키를 따라가듯 학교를 뒤로 했다.
낯익은 길을, 다섯이서 걷는다. 평소에 비해 한 명밖에 안 늘었는데, 야스나가 낀 것 만으로 왠지 대그룹이 되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유키, 아스타와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교문을 나설 무렵에는 어느 샌가 토마리와 야스나 사이에 끼어 걷고 있었다.

"하즈무 군, 싫어하는 음식은 뭐야?"
"싫어하는 음식?"

흥미로 눈을 반짝이며, 야스나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듯 바라본다. 왠지 미워할 수 없는, 귀여운 몸짓이다.

나는 '으음-' 하는 소릴 내며, 턱을 들어올렸다.

"딱히 떠오르는 건 없는데……."

싫어하는 걸 생각하려 해보던 차에, 반대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즈무 너, 어렸을 땐 탄산음료 못 마셨잖아."

나보다도 조금 낮은 곳에서 토마리가 올려다보며 말한다. 조금 자랑스러운 듯이 입가가 조금 올라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 그러고보니."

나 자신도 잘 기억이 안났는데, 분명 어렸을 적엔 탄산 같은 게 싫었다.
용캐도 기억하네- 하고 감탄하고 있는 나를 가로막듯, 야스나가 활발한 목소리로 물어온다.

"지금도 싫어?"
"싫어하는 정도는 아냐. 자주 마시진 않지만."

야스나와 토마리 사이는, 역시 아직 뭔가로 가로막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제거할만한 말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나와 야스나와 토마리 이렇게 세 명이서 이야기를 나누는 이 상황이 너무도 따사롭게 느껴졌다. 오른쪽을 보면 야스나가 미소짓고, 왼쪽을 보면 토마리가 곁에 있다. 이곳은 아주 즐겁고,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나는 아마도, 이곳을 좋아하는 걸거다. 마치 보드라운 빛에 휩싸인 듯한, 양지와도 같은 이곳을.
나와 야스나와 토마리. 묘하게 연관성 있는 이름들……. ─註 : 하즈무는 튀어오르다. 야스나는 쉬다(야스무)와 어감이 비슷하며 토마리는 멈춤. 정지라는 뜻─ 하지만 굉장히 느낌이 좋다. 계속 이대로 있고만 싶다.
아유키와 아스타와는 또 다른, 벗어나고 싶지 않은 곳이다.
그러기에, 야스나와 토마리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건 솔직히 말해 괴롭다.
고르고 싶지 않다. 못 고르겠어. 그런 생각이 든다.
고르고 말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양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대답을 하며, 조금 가슴이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어머나."

갑자기, 앞에서 걷고 있던 아유키가 발을 멈추고 목소리를 냈다. 아유키의 시선 끝에 있는 건, 전신주에 붙은 포스터다.

"여름 축제."

또렷한 발음으로, 아유키가 포스터의 내용을 우리에게 알려온다.
아유키가 말한대로, A4 사이즈의 하얀 종이에 손글씨로 여름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이 쓰여져 있었다. 이번주 토, 일요일 저녁 5시부터 카시마 신사에서. 어렸을 적부터 매 해 열리는 축제다.
신사는 결코 크지는 않지만, 축제날 밤에는 많은 노점이 늘어서 아주 시끌벅적해진다.

"벌써 그렇게 됐나."

내 옆에서 포스터를 본 토마리가 기쁜 듯이 말했다. 그 옆모습에 나도 작년의 열기가 생각나, 몸 안이 들뜨기 시작했다.
축제의 그,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분위기가 좋다. 언제까지고 웅성웅성 떠들어대고, 멈추지 않아도 될 것만 같은 공기의 맛을 떠올린다.

"기대된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그 말에 이끌리듯이, 나는 야스나를 돌아본다. 야스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좋을지 고민하며, 나를 향해 작게 끄덕였다.
그 몸짓에, 나는 놀란다. 야스나가 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고 말았다.
내 안색을 살피는 듯한 눈짓 속에는 말이 담겨있다. 축제에 같이 가지 않을래, 하는.
반사적으로, 나는 작년 이맘 때에 열렸던 카시마 신사 축제를 떠올렸다. 당일, 당연하다는 듯이 토마리는 나를 데리러 와 주었고, 나는 토마리가 데리러 오는 걸 기다렸다가, 함께 나갔다. 그리고 신사 앞에서 아스타, 아유키와 함류해서, 넷이서 같이 축제를 즐겼다.
올해도, 토마리는 나를 데리러 올거다. 어렸을 적부터 그랬듯이, '데리러 가도 돼?' 하는 말은 하지 않고서.
나와 토마리가 쌓아온 수많은 습관 안에 야스나는 없었고, 그 안에 야스나를 끼워넣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하는 걸 생각하니, 머릿 속이 어지러워진다.
야스나의 소리 없는 권유를 눈치채지 못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마저 하고 말았다.

"다 같이 갈까."

내 사고를 뚝 끊듯이, 아유키의 목소리가 모두의 귀에 닿는다. 표정 한 점 바꾸지 않고 말한 아유키의 한 마디는, 단호하고도 흔들림 없이 퍼져나갔다.
나는 아유키의 진의를 알지 못한 채, 넋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그 냉정한 옆모습을 본다. 아유키가 말한 '다 같이' 라는 건, 여기 있는 모두를 말하는 거겠지. 즉 나, 아유키, 아스타, 토마리…… 야스나 이렇게 5명.
지금 이렇게 함께 돌아가고 있는데다가, 아유키는 야스나와 사이가 나쁘지도 않다. 보통 때라면 아유키의 말은, 아무것도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아유키는 알고 있을 거다. 토마리와 야스나의, 이 묘한 소리를 내며 삐걱대는 관계를, 그 사이에 있는 게 나라는 사실도.

"괜찮네, 그거. 카미이즈미도 갈거지?"
"에, 나, 난……."

아스타의 들뜬 목소리에, 야스나는 망설이며 내게 눈을 돌렸다. 도움과 대답을 바라는 듯한 눈빛으로, 나는 그런 야스나의 표정에 아무런 보답도 해주지 못한 채, 시선을 흘리듯 아유키를 봤다.
아유키는 아주 잠시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포스터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사람이 많을 수록 재미있을 거야. 토마리도 괜찮지?"
"아, 아아…… 응."

아유키가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시키는 건 드문 일이라, 토마리도 눈을 둥글게 뜨며 놀라고 있었다. 억지스럽게까지 들리는 말투로 동의를 구하는 아유키에게, 반론 같은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럼' 하는 듯한 몸짓으로 아유키는 우리를 한 바퀴 둘러보더니, 의사를 확인했다.
아무도, 그런 아유키의 판단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토마리는 나와 야스나가 단 둘이서 축제에 가는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야스나도 마찬가지. 그리고 나는, 어느 한 쪽을 골라야 하는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스타는 다 같이 즐겁게 축제에 갈 수 있다.
하지만, 아유키의 본심만은 좀처럼 알 수 없었다.

"그럼 일요일에 가기로 하자. 저녁 5시에 카시마 신사 앞이면 되겠지?"

친구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문제가 없다는 걸 전하며, 나는 맘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왠지 건방진 것 같아 조금 생각하기 껄끄럽지만, 만약 토마리와 야스나 둘에게서 따로따로 축제에 같이 가자는 말을 들었다면, 나는 분명 어느 한 쪽에도 대답을 못 해주었을 테니까.
내가 여자아이가 되고서, 몇일이나 지났다. 변화한 몸도 내 것이라고 자각할 수 있게 되었는데, 나는아직도 내 감정조차 정확히 모르고 있다. 그건 너무도, 미안한 일처럼 느껴졌다.



집에 들어서 '다녀왔습니다' 하고 말하니, 평소처럼 쟝 푸우가 달려들어 나를 열렬히 맞아주었다.
'다녀오셨어요' 하고 말하주는 조금 어린애 같은 목소리는, 순수하게 기쁘다는 감정을 부딪혀오는 것 같아 기분 좋다.

"다녀왔어, 쟝 푸우."

다시 한 번 귀가했음을 알리니, 기쁜 듯 나를 바라보는 쟝 푸우의 뒤에서 엄마가 고개를 내밀었다.

"하즈무, 잠깐 좀."
"뭔데?"

엄마는 쟝 푸우처럼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지으며, 거실에서 손짓을 했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쟝 푸우와 함께 거실로 들어서니, 커다란 종이봉투 2개가 곧장 눈에 띈다. 역 앞에 있는 백화점의 봉투다.

"백화점에서 싸게 팔길래, 사왔단다."

노래라도 부르듯이 기쁨을 목소리에 실어, 엄마는 종이봉투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펼치기 시작했다. 긴 하늘색 직사각형 안에, 엷은 핑크색 패랭이 꽃이 군데군데 피어있다. 눈에 익은 모양이다.

"이거 혹시, 유카타?"
"딩동댕-! 정답!"

또 하나의 봉투에선 감색 천을 경쾌하게 헤엄치는 금붕어 무늬의 유카타가 튀어나왔다. 엄마는 유카타 위에 허리끈을 꺼내서 얹으며, 무슨 노래인지 모를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이게 하즈무 거고, 이게 쟝 푸우거야."

꼭 어린애 같은 표정으로, 엄마는 하늘색 유카타와 감색 유카타를 차례로 가르켰다. 자기 거라고 알려준 감색 유카타를, 쟝 푸우가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주말에, 축제가 열린다더라. 이거 입고, 쟝 푸우랑 같이 다녀오렴."
"축제 가고 싶어요오!"

아무래도 내가 학교 간 사이에, 엄마한테서 축제에 대해 이것저것 들은 모양이다. 쟝 푸우는 들뜬 목소리로 내게 달려들더니, 눈을 반짝이며 이쪽을 봤다.
친구들이라면, 당일날 갑자기 데리고 가도 아무렇지도 않게 쟝 푸우를 받아들여줄거다. 일단은 친척이라고 연락해서 알려두자.

"그래. 그럼 내 친구들이랑 같이 갈까?"
"뿌우!"

그나저나, 유카타라. 그것도 패랭이 꽃 무늬.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한 번 사줬던 것 같은데, 언젠가부터 유카타도 안 입게 되었다. 오랜만에 입게 된 유카타가, 여자아이 것이 될 줄이야.
하루가 지날 때마다 계절은 한여름에 가까워지고, 그리고 더위가 더해갈 수록 나는 여자아이가 되어간다.
소지품도 복장도, 주변의 시선도. 그리고 조금씩이지만, 내 내면도. 내 짐작이지만.
얼마 전에는 굉장히 싫었지만, 나는 어느 샌가 이런 나에게 익숙해져버린 것 같다.
좋지 않은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나인채로, 나 자신인 채로 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뭔가 일기의 마지막 문장 같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날 밤. 하루가 끝나고 집 안의 불빛이 사라질 즈음. 오늘에서 내일이 된 지 얼마 안 됐을 즈음. 나는 무언가의 기척에 눈을 떴다.
금방 눈에 들어온 건, 침대에 빈 부자연스러운 공간이었다. 잠들기 전엔, 그곳에 쟝 푸우가 누워있었다.

"쟝 푸우……?"

이상하게도 잠기운은 금새 날아갔다. 또렷해진 눈으로 어두운 방 안을 더듬으니, 창문가에 서 있는 쟝 푸우를 찾을 수 있었다. 창문에서 달빛이 쏟아져들어와, 그 빛의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는 쟝 푸우의 모습을 몽환적으로 보이게 하고 있었다.

"왜 그래?"

조용히, 멀리, 쟝 푸우는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 표정은 평소의 천진난만함에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신비적인 빛을 띄고 있었다. 먼 곳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말 아득해서, 나는 쟝 푸우가 우주선이었다는 걸 새삼 떠올리고, 실감했다.
어린애 같이 순수한 감정을 드러내는 쟝 푸우의 눈은, 지금은 본 적 없는 신비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랍언니."

쟝 푸우는 나를 발견하더니, 금새 평소처럼 미소를 띄우며 침대 위로 올라왔다. 거기에 아까의 아득함은 없다. 그런 사실에, 나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쉰다.
끝을 알 수 없는 아득함에, 쟝 푸우가 어디론가 가 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왜 그래?"

나는 포옥 고개를 파묻는 쟝 푸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온화하게 웃었다. 그리고서 흘끔, 창문 쪽을 본다.
내겐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밤하늘로 보이는데, 쟝 푸우에게는 다르게 비친 걸까. 쟝 푸우는 무얼 보고 있었을까.

"좋아해."
"에?"

턱 아래에서 쟝 푸우의 목소리가 들려와, 나는 고개를 숙였다. 잘못 들었나 싶어서 내가 되물으니, 쟝 푸우는 퍼뜩 턱을 들어올려 내 올굴을 똑바로 봤다.

"'좋아해'에 대해, 생각했어요오."

좋아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쟝 푸우는 그걸 묻고서 계속,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내가 그런 건 대쳐두고 아무 생각 없이 웃고 있었을 때도, 쟝 푸우는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거다.

"쟝 푸우는 생각했어요오."
"응."

우리는 침대 위에서 정좌를 하고 마주했다. 뭔가 우스운 광경이지만, 이렇게 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았다.

"쟝 푸우는, 오랍언니를 좋아해요."
"에……."

쟝 푸우의 눈 안에, 놀란 얼굴을 한 내가 있다.
쟝 푸우는 마치 자기 안의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 같은, 행복한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계속 오랍언니 생각만 하고 있어요. 쟝 푸우의 모든 걸 오랍언니에게 주고 싶어요오."

너무도 솔직한 말에 심장이 뛰어올랐다. 정면에서 부딪혀온 열의는, 어쩜 이리도 올곧을까. 아무런 저항도 없이, 내 안에 스며들고 만다.

"엄청 좋아해요오, 오랍언니."

방긋 웃는 그 모습이, 내 가슴 속을 뜨겁게 했다.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한 것이 만족스러운지, 쟝 푸우는 이불 안으로 몸을 뉘었다.
나도 쟝 푸우에게 끌려가듯, 다시 한 번 이불을 뒤집어썼다. 쟝 푸우는 뺨을 부비대더니, 얼마안 가 조용히 고른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우주선이란 사실은 손톱만큼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풍부한 동작으로.
그런 쟝 푸우의 평온한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잠기운을 기다리고 있었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호흡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나는 쟝 푸우가 해준 말을 떠올린다.
굉장히 짧고, 간결했던 쟝 푸우의 사랑 고백. 거기 담긴 것은 단순하고도 순수한 좋아한다는 감정 뿐이다.
자기자신 안에 있는 좋아한다는 감정을, 그대로 말로써 상대에게 전한 것 뿐. 눈 앞에 조심스레 놓아둔, 너무도 작은 동작.
그에 따라 누군가가 무언가를 생각한다던가, 시간이 어떻게 흐른다던가. 그런 생각은 조금도 섞여있지 않다. 자신이 가진 것을 보여주고 싶을 뿐.
그것이 쟝 푸우의 고백이자, 좋아한다는 마음이었다.
그것이 너무도…… 부러웠다. 쟝 푸우처럼 있는 그대로를 전하는 건 분명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상대방에 대한 변명이라던가, 자신이 빠져나갈 길이라던가, 주변의 시선이라던가. 쓸데없는 것이 잔뜩 떠올라, 말을 가로막는다.
하지만 쟝 푸우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방해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그저 상대방을 좋아하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것이 굉장히 굉장해…… 부럽다.
나도 그렇게 말해보고 싶다. '좋아해' 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by -JDS- | 2009/05/14 22:48 | ┗카시마시 Girl meet girl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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