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카시마시 ~Girl Meets Girl~ 4장 3막

카시마시 ~ Girl Meets Girl ~

원작 - 아카호리 사토루
저자 - 코마오 마코
 Translation by - J.D.S.





용자 전설의 시작. 그리고 대단원.

제 4장. 하즈무, 흔들리는 마음(戀心)

3.


 일요일, 아침부터 쟝 푸우는 축제 기분이었다. 점심이 지나고부터는 유카타를 끄집어내서는 거실 테이블에 펼쳐놓고, 금붕어 무늬를 신이 나서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도 그런 쟝 푸우의 모습을 보면서, 조금씩 서쪽으로 빨려들어가는 태양의 속도로 기분이 들뜨고 있었다. 일년만의 축제는 역시 기대된다.
  유카타를 걸친 순간, 오싹하고 등에 한기가 느껴졌다. 뭔가 굉장히 귀중한 것에 닿아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자, 이쪽보고."
  "으, 응……."

  옛날부터 딸한테 유카타를 입혀주고 싶었다고 행복에 젖어 말한 엄마는, 내게 척척 유카타를 입히고 있다.
  내 눈 앞에는, 이미 금붕어 무늬 유카타를 입은 쟝 푸우가 정좌를 하고 앉아있다. 꼬깃꼬깃한 띠는 붉은색에서 점차 노란색으로 변하는 듯한 색감을 하고 있다. 쟝 푸우에게 잘 어울리고, 귀엽다.

  "우…… 엄마, 답답해."
  "좀 참아. 금방 익숙해질거야."

  압박하듯이, 차분한 붉은색 띠가 내 몸을 졸라맸다. 빳빳하게 고정하기 위해 필요하기야 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숨쉬기가 힘들다.

  "자, 됐다."

  엄마가 띠의 묶은 부분을 두들기고서야, 나는 버티고 있던 발에서 힘을 뺐다.
  하지만 답답한 느낌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는다. 유카타란 게 이렇게 괴로운 거였나?
  조금이라도 띠를 느슨하게 할 수 없을까 싶어서 띠 사이에 손가락을 넣었다가, 엄마한테 혼났다.
  시험 삼아 조금 걸어본다. 다리를 벌릴 수 없어서 걷기 힘들지만, 묘한 기쁨이 솟아난다. 특별한 옷이란 건, 생각보다 기분을 들뜨게 해주는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바로 옆에선, 엄마가 쟝 푸우의 긴 머리를 높이 올려 묶고 있다. 경단 머리에, 금붕어와 수련꽃이 흔들리는 비녀가 꽂혔다.
  머리를 묶은 유카타 차림의 쟝 푸우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여자아이는 옷차림으로 인상이 꽤나 바뀐다지만……. 지금의 나도,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풍길까.
  전원이 꺼진 TV에 내 모습을 비춰봤지만, 잘 모르겠다. 왠지 부끄러워져서, 나는 검은 TV화면에서 눈을 땠다.

  "하즈무, 지갑 가져와야지."
  "아, 응."

  축제에 갈 거니, 지갑을 깜박할 순 없다. 나는 모처럼 입혀준 유카타가 흐뜨러져버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작은 걸음으로 계단을 오른다.
  방에 불은 켜지 않은 채, 나는 복도의 불빛에 의지해 방 안으로 들어갔다.
  지급은 아직도 학교 가방에 있다. 책상에 걸어둔 가방 안에서 지갑을 꺼내는 김에, 문득 생각이 나서 필통도 같이 꺼냈다. 그 안에는 야스나에게서 받은 립크림이 들어있다.
  어둑해진 방 안, 나는 전신 거울 앞에 선다.유카타를 입은 나는 평범한 여자아이. 패랭이 꽃무늬 유카타는 귀여웠다.
  나는 하얀 맆크림을 조금 꺼내서, 긴장하며 그것을 입술에 가져갔다. 부드러운 듯한 단단한 듯한, 이상한 감촉이 느껴진다. 살며시 쓰다듬듯이, 립크림을 바른다. 받고서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립크림. 써보려했지만, 왠지 긴장이 되서 뚜껑을 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하니까, 족므은 기분 전환을 해보고 싶었다. 이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모른다.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은은하게, 달콤함 딸기향이 코에 와 닿았다.
  조금 끈적거리지만, 싫진 않다. 희미하게 색이 들어간 내 입술에 조금 쑥쓰러워하며, 나는 립크림과 토마리에게서 받은 바닷가재도 같이 가지고 나왔다.
  바닷가재는 가방 대용 주머니에 묶어서, 안에 넣어두려 한다. 혼자서 방을 지키는 건 쓸쓸할 테니까.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왔다.
  그 때, 타이밍을 재기라도 한 듯 현관에서 벨소리가 들린다.

  "토마리다."

  나는 평소처럼 달려나가려다 발이 엉켜, 균형을 다시 잡으며 문을 열었다.
  문 너머에는 평소의 양갈래머리를 경단처럼 말아올린, 오렌지색 유카타를 입은 토마리가 서 있다. 노랗게 물든 하늘을, 새빨간 잠자리가 날고 있었다.

  "하즈무……."

  토마리의 옷차림에 눈을 빼앗긴 나와 마찬가지로, 토마리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나를 위아래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서로의 표정을 보고는, 웃음을 터뜨린다.

  '일일이 놀랄 것 없는데' 하고, 두 웃음소리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금방 나갈게."
  "알았어."

  일단 문을 닫고서 나는 거실에 고개를 내밀고는, 유카타를 입은 채 기다리던 쟝 푸우에게 말했다.

  "쟝 주우, 가자."
  "네에, 오랍언니."

  쟝 푸우가 가져다 준 주머니에, 가져갈 물건을 넣는다. 지갑, 핸드폰에 립크림, 바닷가재. 잊어버린 거 없음.

  "밖에선 날고 그러면 안돼, 알았지?"
  "알았어요오."

  낮부터 몇 번이고 했던 주의를 다시 한 번 쟝 푸우에게 일러두고, 나는 '다녀오겠습니다' 하며 문을 열었다.

  "오…… 응?"

  내 뒤를 따라 나오는 쟝 푸우를 보고, 토마리는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쟝 푸우를 내 옆에 세운다.

  "얘는, 쟝 푸우라고 해."
  "안녕하세요오."

  쟝 푸우는 아까 가르쳐준 대로, 꾸벅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얘도 같이 데려가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

  내 옆에서, 난생 처음 축제에 갈 생각에 들뜬 쟝 푸우가 미소를 띄우고 있다.

  "아, 혹시…… 우주선?"

  눈을 휘둥그레 뜨며, 토마리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말했다.

  "으, 응…… 맞아."

  쟝 푸우가 우리집에 온 다음날, 나는 우주선이 여자아이로 변해서 함께 살게 되었다는 얘기를 했었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한 건데, 또렷이 기억하고 있어준 것이 조금 기쁘다.

  "애들한테는 친척이라고 소개하려고 하는데……."

  거짓말 하는 것 같아서 조금 꺼림칙하지만, 우주선이라고 소개하면 여러모로 설명하기 힘들 것 같았다. 쟝 푸우가 실은 우주선이라는 사실은,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에, 천천히 이야기하고 싶다.

  "아아, 알았어. 잘 부탁해, 쟝 푸우."
  "뿌우."
  "고마워, 토마리."

  토마리는 가볍게 쓴웃음을 짓더니, 달각 하고 나막신 [註 : 게다, 일본식 나막신] 소리를 내며 걷기 시작했다. 나도 쟝 푸우를 데리고 토마리와 나란히 걷는다.
  가지런하지 않은 나막신 소리를 달각거리며, 우리는 평소처럼 다를 바 없는 공기 속을 걷기 시작했다. 해는 점점 서쪽으로 기울어가고, 그런 시간의 흐름 같은 것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서.
  아직, 한여름이라 하기엔 조금 이르다. 해만 저물고 나면 나름대로 시원하기도 해서, 신사까지 걸어도 그다지 땀은 나지 않았다.

  "어~이, 하즈무~, 토마리~!"

  신사 앞에는 벌써 다들 모여서, 가장 앞쪽에 있던 아스타가 큰 소리로 위치를 알려주었다.
  놀랍게도, 모인 다섯명 모두 유카리를 입고 있었다. 그렇게 하자는 얘긴 전혀 없었는데, 작년엔 당연하다는 듯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왔던 아스타마저도, 시원스럽게 유카타를 입고 있다.

  "예상했던대로, 하즈무도 유카타구나."
  "예상했던대로?"

  갑작스런 말에 나는 눈을 둥글게 떴다.

  "너희 어머니가 지금의 하즈무에게 유카타를 안 힙힐 리가 없다고 생각했거든. 나만 따돌림 당하지 않도록, 나도 사왔다 이거야."

  그렇게 말하며 자랑이라도 하듯 가슴을 편 아스타의 유카타는 전채적으로 엷은 남색으로, 어째선지 곳곳에 '차'(茶)라고 쓰여있었다.

  "다 모였지?"

  말끔하게 자세를 바로잡은 아유키의 유카타는 흰색. 선명한 붉은 띠가 눈에 띄고, 검은 농어무늬가 차분한 압박을 느끼게 한다.
  침착한 태도도 한 몫 거들어, 굉장히 어른스러워 보인다. 정말 같은 나이인 걸까 한ㄴ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 건너편에 나의 어린에 같은 면이 비추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하즈무 군, 안녕."

  아유키와 아스타의 한 발짝 뒤에 서 있던 야스나가, 나를 보고는 표정을 부드럽게 무너뜨렸다. 높이 올려묶은 머리의 한 구석에서, 섬세한 흰 꽃 모양을 한 비녀가 흔들리고 있었다. 꽃 잎 끝이 솟아있는 게, 자스민 꽃처럼 보였다.
  초록색에 윗쪽을 향해 백합이 핀 유카타로 몸을 감싼 야스나는,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길 정도로 예뻤다. 이런 걸 섹시하다고 하는 걸까. 몸 앞으로 양손을 포개어, 평소엔 가방을 들었을 곳에 붉은색 주머니를 든 모습은, 청초하게 핀 산백합을 떠올리게 했다.

  "아, 안녕."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엉키는 바람에, 내 대답은 영 꼴사납게 되고 말았다.

  "유카타, 귀엽다. 하즈무 군한테 잘 어울려."
  "그, 그런가?"

  야스나의 한 마디에, 내 얼굴이 뜨거워진다. 머리까지 오른 열을 억누르듯이, 나는 필사적으로 평범한 미소를 표정에 덧씌웠다.

  "고마워. 야스나도 잘 어울려."

  아주 잠시 평소처럼 잘 행동했다고 생각했지만, 야스나가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이 기쁨을 표정에 드러내자 나도 모르게 당황하고 만다.

  "정말? ……기뻐."

  수줍은 몸짓으로 보내오는 시선에, 나는 귀를 붉게 물들인다. 여자아이의 낯선 옷차림엔 신기한 매력이 있다고, 전에 아스타가 그랬다. 그 땐 무슨 소린지 잘 몰랐지만, 지금이라면 전면적으로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유카타를 입고 있다는 사실에, 친근감 같은 것도 느껴진다. 뭔가 굉장히 신기한 감각이다.

  "슬슬 가자."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언짢은 목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며 야스나에게서 시선을 떼었다.
  마주친 토마리의 눈에서는,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약간의 불쾌함이 느껴졌다.

  "그럼 출발할까. ……그 전에, 하즈무 군."
  "에?"

  나는 아유키의 시선을 따라, 내게 꼭 붙어있는 쟝 푸우를 봤다.

  "그 애, 소개시켜줄래?"
  "뿌?"

  자신에게 모이는 시선에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쟝 푸우가 나를 올려다본다.

  "아, 그랬지."

  아직 소개하지 않았다는 걸 완전히 잊고 있었다. 나는 허둥대며 모두에게, 쟝 푸우를 친척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선 모두 다 함께, 한 덩이가 되어 북적대는 신사 안으로 들어갔다.

  "와아…… 굉장해."

  신사 안은 이미 꽤 많은 사람이 들어서, 사방에서 흥겨운 북적임이 날아든다. 끝없이 늘어선 듯한 등불과 노점을 이정표 삼아, 우리는 조금씩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씩 어둑어둑해지는 거리. 신사 안은 많은 등불이 밝혀지고, 좋은 냄새가 풍기는 가게가 주욱 늘어서있었다.

  "역시 축제는, 이래야지!"

  들뜬 목소리를 내며 아스타가 뛰쳐올랐다. 그걸 곁눈질하며, 나도 아스타와 마찬가지로 흥분하고 있었다.

  "쟝 푸우,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

  떠들썩한 분위기에 들떠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쟝 푸우의 곁에는 아유키가 있어주었다. 아유키가 옆에 있으면 100% 괜찮을 거다.
  오늘은 어찌되었건, 이 일탈적인  분위기를 즐기자. 나는 첫번째 가게를 보며 그런 결심을 했다.

  "하즈무 군은 뭐가 좋아?"

  들여다보는 야스나의 얼굴은, 머리 때문인지 평소와 다르게 보인다. 낯선 각도에 내 마음이 크게 뛰었다.

  "으-음, 타코야키나, 솜사탕 같은 것도 좋고."

  나는 평정을 되찾으며, 지금까지 먹어봤던 축제 음식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축제 때마다 사는 게, 타코야키와 솜사탕. 어릴적부터 그랬다.

  "야, 하즈무. 저기 타코야키 있더라. 먹을 거지?"
  "아, 응."

  내가 대답하자마자, 토마리는 재빨리 타코야키를 아저씨에게 주문한다.
  옷차림은 달라도, 토마리는 변함없는 토마리. 안도감과 함께, 나는 토마리에게서 따끈한 타코야키를 받아들었다.
  타코야키를 보고 조금 웃고 만다. 토마리가 사 온 타코야키는, 빨간 생강이 빠져있었다. 내가 싫어하니까.

  "고마워."
  "엉."

  조금 쑥쓰러운 듯이, 토마리가 대답한다.
  그 뒤에서, 쟝 푸우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오랍언니, 그건 뭐예요?"
  "이건 타코야키야. 먹어볼래?"

  눈을 빛내며 끄덕이는 쟝 푸우에게, 나는 둘로 쪼개서 조금 식힌 타코야키를 먹여준다. 그다지 뜨거워하지도 않고, 쟝 푸우는 웃는 얼굴로 타코야키를 삼켰다.
  이렇게 천진난만한 표정을 보고 있자면, 실은 우주선이란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만약 나중에 친구들에게 쟝 푸우의 정체를 말할 때가 온다 해도, 실제로 믿어줄지 어떨지 모르겠다.

  "오랍언니도 먹어요."

  내가 들고 있는 이쑤시개는 아랑곳 않고, 쟝 푸우는 절반 남은 타코야키를 냉큼 들어서 내 입가로 옮긴다. 내가 먹어줄거라 굳게 믿는 눈으로, 내가 입을 벌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머뭇거리면서도, 나는 그걸 조심스레 먹는다. 맛은 평범한 타코야키와 다름 없을텐데, 바로 눈 앞에 있는 쟝 푸우의 기쁜 표정이 쑥쓰러워서 맛을 잘 모르겠다.

  "아, 오랍언니."
  "에?"

  빨간 생강이 빠진 타코야키를 하나 더 먹으려던 참에, 쟝 푸우가 나를 불렀다. 그에 시선을 옮길 새도 없이, 쟝 푸우의 머리가 눈 앞으로 날아든다.

  "아……."

  누군가의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아유키인 것 같다.
  목소리의 주인을 판별하기 전에, 나는 몸을 경직시켯다.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낼름하고 쟝 푸우의 혀가 내 입술을 더듬고는 떨어진다. 정확하게는, 내 입가에 묻어있던 소스를 핥은 거겠지만.
  부드럽게 젖은 감촉과 함게,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쟈, 쟝 푸우……."
  "뿌?"

  지금의 내 표정은 굉장히 볼만할 거다. 하지만 쟝 푸우는 뭐가 잘못되었는지 몰라,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쟝 푸우는 모른거다. 모를 거란 걸 이해하고 있는데, 머리는 연기를 내며 빙빙 돌고 있는 것 같았다.

  "하, 하하, 하즈무!"
  "네, 네에!"

  토마리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나와 쟝 푸우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러자 쟝 푸우가 불만이라는 듯이 입술을 비죽거렸다.그 표정이 사진 속에 잇는 어렸을 적 나와 꼭 닮은 것이, 조금 우스웠다.

  "쟝 푸우는 오랍언니랑 붙어있는 게 좋아요오.:
  "하, 하지만 쟝 푸우. 너무 붙어있으면 걷기 힘들거든?"

  붙어다니는 게 싫은 건 결코 아니지만, 나는 부끄러움을 얼버무리듯이 쟝 푸우를 달랬다.

  "봐, 하즈무. 저기도 이것저것 많다."

  토마리도 나와 비슷한 것을 얼버무리기 이ㅜ해, 일부러 큰 몸짓으로 신사 안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닭꼬치에 살구사탕, 빙수. 오늘의 신사는 눈요기 거리 투성이다. 정처없이 맴도는 시선을 축제 탓으로 돌리며, 나도 모르게 생각에 바질 것만 같은 사고를 축제로 덧칠하며, 나는 넋을 놓고 소리내어 웃었다.
  그렇게 하면, 무언가를 그곳에서만이라도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어느 덧 주변은 어두워져, 떠오르듯 밝혀진 등불이 신사 안을 한층 더 환상적으로 보이게 했다. 그 안을 걷는 건 왠지 굉장히 즐거운 것 같아서, 내 마음은 당바닥의 단단함을 잊고 떠오른다.
  어느 샌가, 시간이 지나고 있다는 것마저 잊고 잇엇다.
  그런 내 손에 무언가가 닿아, 조심스럽게 나를 이끌엇다. 보드랍게, 어렴풋이 피어나는 현실감. 하지만 그건 환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당황스런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나는 별 저항없이 축제의 빛에거 그 그림자로 끌려갔다. 조용한 발걸음으로 나를 이끄는 그림자가, 엷은 빛 속에 떠올랐다.
  황록색에 피어난 하얀 백합. 흔들리는 머리장식은 자스민을 닮았다.

  "야스나……?"

  잘못 본 게 아니라, 그건 틀림없는 야스나였다. 내 손가락을 휘감듯이 쥐고, 말없이 걷고 있다. 맞닿은 손끝에서는 긴장감 같은 것이 서서히 전해져 왔다.
  한발짝 걸을 때마다, 좀 전까지 세계의 모든 것인양 느껴졌던 떠들썩함과 빛이 멀어져간다. 그 대신, 몸 속까지 스며들 듯한 고요함이 퍼진다.
  유카타의 보폭은 걷기 힘들었지만, 야스나는 내 발걸음에 맞춰주고 있는 것 같았다. 느리진 않았지만, 바르지도 않은 딱 걸음을 옮기기에 적당한 속도였지만, 야스나는 빠르게 라기보다, 강제적인 기색으로 나를 걷게 한다.
  야스나는 축제 장소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발을 멈췄다.
  주변엔 아무도 없고, 등 뒤에 있는 축제는 마치 다른 세상 같아, 마치 야스나만이 숨을 쉬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하즈무 군."

  맑은 목소리로 야스나가 말한다. 손끝에 조금, 힘이 실렸다."

  "있잖아……. 꼭 들어줬으면 하는 얘기가 있어."

  조용히, 야스나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주변의 나무들은 묵묵히 입을 닫고, 밤에 녹아들고 말았다.
  나는 그런 정적과도 같은 공기 속에서 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듯이, 작은 소리를 내어 입안의 타액을 삼킨다. 같은 타이밍에, 야스나의 목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나, 하즈무 군이……."

  말 한마디 한마디를 또렷하게, 야스나는 내 앞에 감정을 펼쳐나간다. 나는 그 다음 말을 말면서도, 목소리가 되어 들려오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하즈무 군이 좋아."

  가슴 안 쪽에서 무언가가 달음박질 쳤다. 손끝에서 야스나의 열기가 흘러와, 내 열기와 뒤섞인다.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말은 걸려서 나오지 않았다.

  "너무 좋아. 누구보다도……. 하즈무 군과 가까워지고 싶어."

  천천히, 야스나는 발뒤꿈치를 끌듯이 나를 돌아봤다. 떨리듯이 덮어진 눈썹이 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멀리 있는 빛이 눈썹을 비추니, 젖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좀 더, 다가가고 싶어."

  조금씩 들어올린 시선이, 나와 부딪힌다. 절실함으로 흔들리는 눈빛이 거기에 있다.

  "하즈무 군은 날 어떻게 생각해?"

  물어오는 입술의 움직임이 굉장히 느리게 느껴졌다.
  마치 내 안에 미끄러져 들어오는 듯한 목소리.

  "나는……."

  답을 바라는 거라 생각했다. 실은 그렇지 않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감정을 말로 옮긴 것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내 속을 살피는 것에만 머리를 쓰고 있었다.
  나는 야스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 답을 찾아야만 했다.
  야스나가 어떤 마음으로 물어왔건, 이 축제의 밤이야말로 내가 무언가를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날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라던 대답보다도 먼저, 내 안에서 스며나오듯 의문이 솟아나온다. 전부터 계속 신경쓰이고, 마음에 걸려 떨쳐지지 않았던 의문이.

  "있잖아, 야스나.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게 있는데."

  야스나가 바라고 있는 답이 조금도 포함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이 조금 가슴 아팠지만, 지금을 놓치면 앞으로도 계속 못 물어볼 것만 같았다.

  "야스나는, 여자아이잖아?"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며, 나는 말을 꺼냈다.
  그러자마자, 야스나의 표정이 굳어진다. 무언가에서 도망치듯 시선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도…… 여자아이가 되었어."

  그 날, 내가 여자아이가 된 날. 나는 야스나에게 고백해서 차였다. 왠지 굉장히 옛날일 같다.

  "야스나는 …… 여자아이인 내가 좋다는 거야?"

  해가 기우는 교사 뒤에서 들은, 야스나의 울음 섞인 목소리가 잊허지지 않는다.
  슬픈 듯한 색을 띤 야스나의 눈에 가슴이 아려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가장 묻고 싶었던 것을 묻는다.

  "남자인 나론…… 안됬던 거야?"

  야스나의 마음을 부정한다던가, 그럴 생각까지는 없다. 하지만 남자였을 때와 여자가 된 지금, 나의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고 싶었다. 야스나의 마음을 바꾼 결정적인 무언가가 있다면, 난 그걸 알고 싶다.

  "역시…… 이상한 것 같지?"

  주륵 하고, 흘러넘치듯 야스나의 목소리가 떨어진다.

  "이상한 게 아니라……. 어째설까 하고 계속 신경이 쓰였어. 나, 내 생각엔 그냥 남자에서 여자가 되었을 뿐, 속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든……."

  슬퍼보이는 야스나의 표정을 어떻게든 해주고 싶어서, 나는 변명하듯이 말했다. 하지만 야스나의 표정은 조금도 밝아지지 않았다.

  "여자가 여자를 좋아하다니, 이상하지."
  "야스나……."

  뒷걸음 치듯이, 내 손가락에서 야스나의 손가락이 떨어져나간다. 멀어져가는 체온이 굉장히 아쉽다.

  "나 있잖아……. 아주 예전부터 그랬어."
  "그래……다니?"

  되묻는 나를 바라보며, 야스나는 힘없이 웃었다. 슬프고, 마치 자책하는 듯한 입술의 곡선.

  "남자를, 좋아할 수가 없어."

  웅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는, 너무도 진지했다. 주머니를 든 손을, 꾸욱하고 강하게 쥐었다.

  "그건…… 남자가 싫다는 거야?"

  내 물음에, 야스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런 게 아냐. 싫다던가 좋아한다던가, 그런 게 전혀 느껴지지 않아. 흥미를 가질 수 조차 없었어. 얼굴이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

  어떤 남자를 봐도,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어떤 감각이며, 어떤 세상일까. 나는 그걸 실감할 수 없다.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조금씩이나마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 게 없을 때…… 야스나는, 무슨 생각을 했까. 예를 들어, 내가 야스나를 불렀을 때.

  "하지만, 하즈무 군 만은 조금 달랐어. 처음으로 내가…… 남자아이를, 신경쓰게 되었어."
  "에……?"

  야스나가 처음으로 의식한 것이 나였다. 그런 말일까.
  야스나는 자신에게 쓴웃음을 짓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쿠르스 양이랑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원예부에서 꽃을 돌보고 있는 것도, 전부 보고 있었어. 정신을 차려보니 난 하즈무 군을 눈으로 좇고 있었고, 하즈무 군이라면 나도,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

  입가는 웃고 있는데, 야스나의 얼굴은 마음이 아파 울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날, 하즈무 군이 불러낸 날도, 교사 뒤로 간거야. 분명 괜찮을 거라고, 그럴 것만 같아서."

  그런 편지를 책상 안에 넣어두었는데, 무슨 용건인지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을 리는 없을 거다. 어렴풋이라도 내가 무슨 생각으로 편지를 넣었는지, 야스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야스나는 중간에 말을 멈추고, 고개를 떨구고 만다. 나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때, 둘이서 웃을 것을 기대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기대도, 야스나의 기대도, 꽃을 피우지는 못했다.

  "집에 가서도 엄청 고민하고, 후회도 했어. 어째서 안됐는지, 어재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만 건지."

  야스나는 분명 굉장히 자신을 나무랐을 것이다. 내게 상처를 줬다는 생각에. 내가 기대하고 있었단 것도, 분명 야스나는 알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뉴스에서 처음으로 하즈무 군에게 일어난 일을 알았어. ……놀라기도 했고, 솔직히 말하자면 믿을 수가 없었어. 하지만 학교에 갔더니, 하즈무 군은 정말로 여자가 되어있고……."

  헤매이던 야스나의 손이 가슴 앞에서 쥐어진다. 나는 그 작은 동작을 내 몸짓인 것 같이 가까이서 느끼고 있었다.

  "여자아이가 된 데에도 놀랐지만, 무엇보다도 내 마음에 놀랐어. 한눈에, 나는 하즈무 군이 좋아서 견딜 수가 없게 되었어. 그저…… 여자아이가 되었을 뿐인데."

  나는 그저 남자에서 여자가 되엇을 뿐. 내가 나라는 부분은 바뀌지 않았다. 여자아이가 된 날도, 그렇게 믿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야스나에게는, 굉장히 크고 중대한 일이었던 것이다.
  야스나는, 자신의 말을 씁쓸하게 곱씹는다.

  "여자아이가 되자마자 그런다고 여길지도 몰라. 경멸한다 해도 어절 수 없어. 하지만 하즈무 군이 좋고, 하즈무 군이 나를 좋아해줬으면 좋겠어."

  아득한 등불이 비쳐, 야스나의 얼굴이 떠오른다. 새하얀 볼에는, 반짝이는 물방울이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본, 야스나의 눈물이었다. 그럴 때가 아니란 걸 알고는 있지만,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예쁘다고 생각했다. 투명한 눈물 너머로 주변의 경치가 비친다.
  야스나는 여자아이. 하지만 내 가슴은 사랑에라도 빠진 듯 고동쳤고, 그 간절한 목소리에 나까지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나는 야스나를.

  "알려줘, 하즈무 군. 날 어떻게 생각해? 확실히 말해줘. 안 그러면 나……."

  숨기지도 않은 채, 야스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이대로 계속 좋아하기만 하는 건 싫어……."
  "나……는……."

  나는 야스나를.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건, 언제나 내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걸어주는 야스나의 미소.즐거운 듯 이야기하는 들뜬 목소리.

  "제 멋대로란 건 알아. 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하는 게 제일 괴로워."

  나는…….

  "야, 하즈무!"
  "아……."

  사박사박 하며 잛은 잡초를 발는 발소리와 함게, 토마리가 옅은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오렌지 색 유카타 옷자락은 조금 흐트러져있다. 아마도 우릴 찾아 돌아다녔던 것 같다.
  아무 말 없이 바져나온 걸, 새삼스레 후회했다. 분명 엄청나게 걱정했을 거다.

  "이런 데서 뭐하고 있었어?"

  다가오는 토마리는 듣기에도 언짢은 것 같았다. 제일 먼저 나를 보고는, 가까이에 있던 야스나를 본다.
  야스나는 토마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두 손으로 황급히 눈물을 닦고 있었다.

  "야스나……."

  토마리는 낮은 목소리로 야스나와 마주한다. 그 목소리는 전에 야스나에게 호통치던 때와 비슷했지만, 그 이상으로 무언가 깊은 사연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야스나 역시, 토마리를 마주 보고 있다. 소리 없는 대화가 두사람 사이에서 오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찍 소리도 못하고, 말없이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바라본다. 왠지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두사람 사이에 끼지 못하는 게 굉장히 쓸쓸하게 느껴졌다.

  "잠깐, 얘기 좀 하자."
  "좋아."

  토마리도 야스나도, 태연한 표정 밑으로 끌어오르는 무언가를 숨긴 채 마주섰다. 꼭 싸움이라도 할 듯이.
  야스나의 얼굴에 더 이상 눈물은 없다. 진지한 눈으로 토마리의 눈을 바라보며, 자신의 의지를 단단히 끌어안고 있다.
  토마리도 야스나의 시선을 받으며, 자신 안의 소중한 것을 꼬옥 쥐고 있었다.
  너무도 강한 의지를 느끼게 하는 대치. 그 사이를 흐르는 공기가 소리를 낼 것만 같았다.
  마주선 두 사람. 정반대인 듯 하지만 어딘가 닮은 야스나와 토마리. 그 공통점.
  나는 알고 있다. 그랬다. 몇일 전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토마리가 반걸음 앞서듯이 해서, 야스나와 함께 걷기 시작한다. 사박사박, 토마리가 왔을 때보다도 느긋한 박자로 풀들이 소리를 낸다.
  가버린다. 야스나도, 토마리도. 내 앞에서 사라져버린다.
  보이는 건 두 사람의 뒷모습. 내 곁에 있던 두사람의 뒷모습.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기분이 점점 솟구친다. 쓸쓸해, 아파. 어째서? 마음이 멈추질 않아.
  토마리, 야스나.
  내게 소중한 사람들.
  지금 말 안하면, 언제 말해.

  "안돼!"

  빡빡해서 움직이기 힘들지만, 나는 유카타 모양이 어찌되건 달렸다. 손을 뻗어, 내 목소리에 돌아보려하는 손을 쥔다.
  야스나의 오른손과, 토마리의 왼손을.
  이제 놓지 않겠다는 듯이, 세차게 세차게 잡았다.

  "가지마! 야스나도 토마리도…… 가지마!"
  '하즈무 군……?"
  "하, 하즈무?"

  방울방울, 눈물이 두 눈에서 흘러나왔다.
  내 안에서 감정이 뚜껑을 밀어재치고 날뛰어대며, 계속해서 말을 지어내 목으로 보내온다.

  "안된단 말야, 야스나도 토마리도, 같이 있어주지 않으면 안된단 말야!"

  꼭 떼를 쓰는 어린애 처럼, 나는 눈물도 닦지 않고 떠오르는 말을 그대로 입으로 옮겼다. 눈물을 닦으려면, 야스나와 토마리의 손을 놓아야만 한다. 하지만 놓아버리면, 이번엔 정말 어디로 가버릴 것만 같아서 무서웠다.

  "이, 일단 진정하라구, 응?"
  "하즈무 군, 손수건……."

  토마리가 달래듯이 등을 쓰다듬고, 야스나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손을 꼭 잡아주었다.
  하지만 내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흘러넘쳤다. 그런 내 손을 잡으며, 야스나가 기운을 복돋아주려는 듯이 미소지었다.

  "괜찮아, 하즈무 군?"
  "자, 하즈무. 정신차리라니까."

  토닥, 토마리의 손이 내 등을 두드린다. 내 안에 실제로는 들리지 않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남자잖아!
  나는 천천히 야스나와 토마리의 손을 놓고는, 두 팔로 눈물을 감췄다. 모처럼 입은 유카타가 눈물범벅이 되고 말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두 사람에게, 할 말이 있어."

  힘내, 도망치지 마 하즈무. 나는 마음 속으로 나를 격려한다. 내겐, 야스나와 토마리가 있으니까.

  "뭔데?"
  "뭔데 그래?"

  야스나는 미소지으며, 토마리는 별스럽다는 듯이 나를 본다.
  나는 되도록 시선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두사람의 눈을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래도 울음이 나와버릴 것만 같아서, 눈물을 참고 잇는 게 표정에 드러나고 만다.

  "나…… 야스나한테도, 토마리한테도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서, 굉장히 기뻤어. 하지만 난 도망치기만 하고, 아무것도 대답해주지 못했어."

  미움을 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뜨거운 감정을 전해준 야스나. 대답은 됐다며 마음을 써준 토마리.
  두사람의 마음에 뒤쳐지지 않을 정도의 것을 나는 가지고 있다.

  "나, 두사람에게 대답을 하고 싶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걸 느끼는지."

  야스나와 토마리의 표정에, 긴장이나 기대, 불안과도 같은, 아까까진 없었던 감정이 더해진다.
  망설이고 있는 건 아니다. 확실히, 두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나 있잖아, 야스나를 좋아해."
  "아……."

  흘러나온 야스나의 숨결은 기쁨으 ㅣ소리다. 그와 동시에, 토마리가 시선을 떨군다.
  나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토마리도 좋아해."
  "에?"

  맹한 소리를 매녀, 토마리가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옆에 서있는 야스나도, 곤혹스러운 것 같았다.

  "난, 야스나도 토마리도 좋아. 한쪽만 고를 수는 없어."

  내 솔직한 마음. 그건 야스나나 토마리에게 있어, 기쁘지 않은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더이상 이 두사람에게 내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다.
  지금까지의 나는, 나 자신에게도 숨기고 있었으니까.

  "나한테는, 야스나도, 토마리도 필요해. 곁에 있어줬으면 해. 아무데도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또. 눈 안쪽이 뜨거워져서, 보이는 불빛이 얼룩진다. 울고 싶지 않은데, 내 의사를 무시하듯이 안에서 넘쳐나고 만다.
  좀 더 야무지게, 두사람에게 말하고 싶은데.

  "나…… 야스나랑 토마리가 좋아. 너무 좋아."

  내 안에 줄곧 있었는데, 보이지 않았던 것. 계속 계속, 하고 싶었던 말. 좋아한다고, 내 소중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었다.

  "하즈무……."

  토마리가 먼저 목소리를 내었고, 야스나가 먼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온화한 공기가, 내 주변을 한바퀴 돈다.

  "나, 나……."

  내 마음을 전부 다 전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왠지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한 것 같다. 아직 멀었다. 이렇게 짧은 말로 다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다음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하즈무, 이제 됐어. 알았어."

  뭐라 말해야 좋을지 몰라, 다시 눈물이 쏟아졌다. 그런 내 등에, 손을 얹으며 토마리가 달래듯이 말한다.

  "하즈무 군, 고마워."

  내 머리를 쓰다듬던 야스나의 손이 미끄러져 내려와, 내 눈초리에 걸려있던 눈물을 훔쳐냈다.
  고개를 들어보니, 걱정스러운 듯 눈썹을 내리깐 토마리와 상냥하게 미소짓는 야스나의 얼굴이 있었다.

  "토마리…… 야스나……."

  목소리는 완전히 눈물에 젖어버려서, 차마 들어주기 힘든 소리가 디ㅗ고 말았다. 나는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눈물이 한방울이라도 줄었으면 하는 생각에, 소매로 눈물을 닦는다.

  "너무 좋아."

  감싸안듯, 토마리와 야스나가 내 어깨를 보듬었다. 따뜻해.
  두사람이 베풀어준 이 상냥함을, 나는 무엇으로 되돌려줄 수 있을까. 자신은 없다. 정말 없다. 하지만, 나는 야스나가 좋다. 토마리가 좋다.
  속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좋아서. 아무리 눈물로 씻어도, 내 마음 속의 탄 자국은 사라지지 않는다.

  "가자, 하즈무."
  "축제, 가자."

  내 오른손을 토마리가, 왼손을 야스나가 잡았다.
  나는 작게 끄덕이고는,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두사람의 손을 잡고 그리운 빛이 밝혀진 축제 속으로 돌아갔다.
  아마도 이걸, 행복이라 부르는 게 아닐까.
  좋아하는 사람과 있는 행복이라고.




  열기와도 같은 축제의 잔향을 오코노미야키와 함께 가지고 돌아와, 걷다 지친 발의 피로를 목욕으로 씻어낸 후, 나는 쟝 푸우를 데리고 침대에 들었다.
  아직 몸 안은 축제회장을 떠나지 못했는지, 조용히 커다랗게 고동치고 있다. 그건 나와 함께 있던 두 여자아이 때문이기도 하다. 야스나와 토마리.
  나는 잘 준비를 마치고 이불을 뒤집어쓰며 생각한다. 내가 오늘, 전하고 만 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있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솔직한 그 감정에 대해서.
  아마도 후회는 없다고 생각한다. 후련하다고까진 못하겠지만, 왠지 개운한 기분이 든다.
  나는 야스나가 좋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뒤지지 않게, 토마리도 좋아한다. 그건 우정과는 조금 다르고, 정열적인 애정과도 다른 듯한 기분이 든다.
  내 안에 있는 어떤 것의 중요한 부분을, 야스나와 토마리가 쥐고 있다. 지탱하고 있다. 그런 느낌이 든다. 만약 그게 사라져버리면 나는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 분명 망가져버릴거다. 그런, 위기감 같은 것도 느낀다.
  하지만 공포나 집착을 넘어서, 나는 그렇기에 두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고 진지하게 생각한다. 내게 있어 두사람은, 내 감정의 일부로서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안될 곳에 있으니까.

  "오랍언니, 잠 안와요오?"

  꾸물꾸물하며 이불 안에서 고개를 내민 쟝 푸우가 나를 올려다봤다. 축제회장에서 들떠서 떠들어댄 탓인지, 커다란 두 눈을 졸리운 듯 꿈벅꿈벅 하고 있다.

  "아니, 잠깐 생각 좀 하고 있었어."

  나는 미소지으며 쟝 푸우에게 대답했다. 내 표정에 안심했는지, 쟝 푸우는 천진하게 미소로 답해준다.

  "있잖아, 쟝 푸우."

  마치 커다란 애정에 둘러싸인 듯한 따스함을 주는 쟝 푸우의 미소에 이끌려, 나는 쟝 푸우에게 말했다.

  "나, 여자아이처럼 보여?"

  묻고는, 내가 먼저 웃고 말았다. 물론 자조 같은 게 아니다.
  내 웃음 때문인지, 웃음소리 때문인지, 쟝 푸우는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몇 번인가 눈을 깜박였다.

  "오랍언니, 여자아이 아니예요오?"
  "아니, 나 여자아이 맞아."

  당연한 대답에, 나는 다시금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래, 나는 여자아이. 하지만 그건 더이상, 싫은 일이 아니었다.
  그 사실이 뭔가 이상하고도, 조금 우습다.

  "하지만, 쟝 푸우."
  "뿌우?"
  "난, 오사라기 하즈무 맞지?"
  "오랍언니는 오랍언니예오오."

  쟝 푸우는 맹하니 있다가도, 미소를 보여주었다. 나는 그 표정에 보드랍게 눈웃음 짓는다. 기뻤다. 왠지 무척이나.

  "축제, 즐거웠지?"
  "뿌우!"
  "내년에도 다 같이 가자."

  그리 말하면서, 나는 다시 이불을 덮었다. 이제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덮을 건 덮고 자야 한다. 감기라도 걸리면 분명, 야스나오 토마리가 굉장히 걱정할 테니까.

  "잘 자, 쟝 푸우."
  "안녕히 주무세요오, 오랍언니."

  조금씩 밀려오는 잠기운에 몸을 맡기며, 나는 창문가의 산딸기를 본다. 이제 곧 새빨갛게 익을거다. 맛을 보고서 괜찮은 것 같으면, 학교에 가져가서 야스나랑 토마리에게도 줘야지. 달콤하고 맛있게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


이렇게, 하즈무 시점으로 본 4장도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어느 한 사람을 택하여 아쉬움을 남긴 애니나 코믹스판과는 다른 무언가 형용하기 힘든 풋풋함이 참으로 좋았더랬습니다 =ㅂ=
어느 한 쪽이 괴로움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기보다는 이런 두루뭉술한 것이 분위기상 어울리는 듯한 기분도 들구요. 뭐... 이건 취향겠지만서도...

자아, 남은 건 에필로그와 작가후기입니다만...
...이거, 데탑만 쓰다가 놋북 쓰려니 뭔가 힘들군요 -_-;
이녀석, 날 거부하는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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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S- | 2009/05/14 22:51 | ┗카시마시 Girl meet girl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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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이제 끝인가요... at 2009/05/24 20:29
서..설마...이게 끝인 겁니까(OTL)

4장을 이렇게 끝내놓고 에필로그에서 누구를 고르네 마네 할 리는 없고(...)


애니나 소설이나 어찌된 일인지 코믹스 2권줄거리에서 잘라먹어버려서 참 한숨밖에 안나오는 전개네요...

코믹스에서는 거의 4권부터가 본편인데 말입니다
(굳이 소설식으로 따지자면...1,2권 발단, 2권 전개, 3권 위기(수-_-명30일..) 정도로 볼 수 있을지도요)

결말 제대로 안 낸 건 진짜 맘에 안드는데...(코마오, 두고보자)


결론
코믹스 평점 SS++
애니 평점 D-
소설 평점 B+
덧)정식라이선스판은...아마 안나오겠죠?
Commented by -JDS- at 2009/05/27 12:12
이제 끝인가요 // 뭐어... 에필로그가 남긴 했습니다만, 실질적으론 이걸로 끝이라 봐도 무방할 듯 합니다. 코믹스를 안 봐서 저야 뭐라 할 말은 없습니다만, 저는 나름 만족했네요 ^^;

으음... 라이센스판은... 에필로그를 다 타이핑하고 나면 출판사에 컨택을 해볼까 싶긴한데,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네요. 이런 걸 내 줄지... 아니, 받아줄 지가 문제인가;
Commented by 헷갈리는점. at 2009/05/24 21:30
바닷가재가 아니고 바다표범이었던 것 같은데(....)

제 눈이 잘못된건가요 ;ㅅ;?
Commented by -JDS- at 2009/05/27 12:12
헷갈리는 점 // -_-;; 엌; 왜, 왜 저기 바닷가재가!?;;; 바, 바다표범이 맞습니다;
Commented by 위 2댓글과 동일인 at 2009/05/30 18:27
-J.D.S.-//내실려면 일단 복사+붙여넣기 신공으로 한글2005같은데 넣어서 맞춤법검사 한번 쫙 하셔야 할 듯 하네요...(찾아보면 오타 꽤 나옵니다)

코믹스 안보셨다면 꼭 보시길 추천드려요 -ㅂ- 그런건 권당 만원주고 사라고해도 안아까울정도에요.(원서도 구하고 싶지만, 사감이 택배물 다 확-_-인하는 막장고등학교 기숙사인지라 절대불가. 만화책 걸리면 당연히 압수에다가 이런 내용(백합)이면 가중처벌받을지도;)


사족)코믹스 애니 소설..그러면 이걸로 카시마시 관련 콘텐츠는 끝인걸까요..?(아쉬움)
Commented by 벌써 3달지났... at 2009/08/23 16:49
결말을 올려주세요 ;ㅅ;...
Commented by -JDS- at 2009/08/25 15:36
벌써 3달 // -_-; 제가 지금 일본에 와 있는 터라... 급히 짐을 챙기느라 번역노트를 가져왔는지 어쨌는지 모르겠네요. 가져왔다면 근시일내에 올리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Commented by landashy at 2010/09/11 00:10
으읏... 여기까지는 애니판하고 진행이 비슷하네요...
애니판은 야스나를 택해 버렸지요...
소설판은 부디 용자전설이 계속되기를...
Commented by -JDS- at 2010/09/11 00:44
landashy // ...아직 이것 관계로 들러주시는 분이 계셨군요 -_-;
덕분에 마지막 에피소드를 안 올렸다는 게 생각나버렸습니다;
Commented by Ruire at 2012/06/13 00:12
마지막 에피소드가 있나요 ㅎ
Commented by Ruire at 2012/06/13 00:22
공방홈에 에필로그가 있었군요 ㅎㅎㅎㅎ

훈훈하게 끝나서 괜찮네요

그럼이제 코믹스를 보러
Commented by -JDS- at 2012/06/20 01:00
Ruire // 지금 보니 부끄러운 부분이 많은 번역입니다만 재미있게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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